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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청문회 후유증❓

5분 전

by BG9 2019. 12. 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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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30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추미애 후보자가 천으로 다리를 묶은 모습이 포착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추미애 후보자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했는데요. 후보자로 지명된 지 24일 만입니다.

 

 

추미애 후보자는 청문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갈색 체크무늬 스카프를 이용해 다리를 고정시켰는데요. 추미애 후보자는 양쪽 허벅지 부분을 스카프로 보이는 천으로 질끈 묶은 채 후보자 석에 앉아 청문회에 임했습니다.

 

이렇게 다리를 묶은 것은 삼보일배 후유증 때문이라고 전해졌습니다.

 

 

추미애 후보자는 2004년 총선 직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으로 떠나간 호남 전통 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광주에서 사죄의 의미를 담아 사흘간 삼보일배를 한 바 있죠.

 

추미애 후보자 측근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삼보일배 이후 다리와 허리가 아파서 그렇게 묶어야 허리를 꼿꼿이 세울 수 있다고 하더라. 본인이 터득한 방식"이라고 말했는데요.

 

이어 "추미애 후보자가 몸이 불편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렇게 해야 자세가 바르게 된다고 한다."며 "청문회이고 많은 국민이 지켜보니까 그렇게 해야 허리를 오랫동안 바르게 세우고, 장시간 앉아 있을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 의구심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습니다.

 

 

추미애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다소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이에 무소속 박지원 의원은 질의를 시작하며 추미애 후보자의 별명인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를 이야기하며 "천하의 추다르크도 역시 청문회 하니까 떤다. 떨지 말고 하라"고 너스레를 떨어 추미애 후보자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추미애 후보자는 오후 질의 때도 박지원 의원이 "평소 추미애 의원답지 않게 너무 굳었고, 웃지 않는다. 웃어보시라"라고 하자 "제가요?"라고 답하며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그녀는 누구인가?

 

- 추미애 -

본명 추미애

1958년생 추미애 올해 만61세

경북여자고등학교-한양대학교-한양대학교 대학원-연세대학교 대학원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춘천지방법원 판사-광주고등법원 판사-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민주통합당 최고위원-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추미애 의원은 2019년 말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습니다. 추미애 의원은 여러 가지의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지역구 5선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서울 지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최초의 판사 출신 야당 국회의원.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여당 대표.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의 TK 출신 당대표.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임기를 다 채운 최초의 당대표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법원에서 10여 년간 판사로 일했고,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스카우트되어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죠.

 

 

추미애 의원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2남 2녀 중 셋째이자 차녀로 태어났습니다. 대구남산초등학교, 구남여자중학교,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죠.

 

1985년, 추미애 의원은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이었던 서성환 변호사와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하여 법조인 부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정계 입문 전 추미애 의원은 춘천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서 일했는데요. 판사 시절 추미애는 ‘까칠한 여성 판사’로 통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군부 독재 정권 시기였는데, 수사 당국이 공안 정국을 등에 업고 구속영장을 남발할 때 ‘법적’으로 용납이 안 되면 기각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번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경찰서장이 한밤 중에 추미애 당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다시 신청할 테니 꼭 발부해달라”며 신경질을 낸 일이 있었는데요. 추미애 의원이 “영장청구권자는 검사인데 서장께서 왜 직접 전화를 하는가? 판사가 한번 결정해 외부로 나간 일은 번복할 수 없다”라고 응수했는데, 다음 날 법원장이 불러 “아버지 같은 경찰서장에게 도대체 뭐라 했길래 서장이 그리 화가 난 것이냐”라며 질책했다고 합니다.

 

 

 

당시 추미애 의원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검찰 쪽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경찰서장이 찾아와 사과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나이 어린 초임 판사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던 주위 사람들에게 추미애 의원은 그렇게 ‘껄끄러운 여판사’로 각인되기 시작했죠.

 

 

추미애 의원은 판사 재직 시절 이런 일도 있었는데요. 1985년 봄,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공안 통치를 위해, 오늘날에는 명작으로 평가 받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등 100권이 넘는 책을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가며 압수수색 하였습니다. 전국 검찰에선 일제히 영장을 청구했고, 전국 법원은 예외 없이 영장을 발부했죠.

 

그때 춘천지방법원에서 초임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 의원에게도 영장이 청구되었다. 춘천의 가장 큰 서점을 상대로 불온서적을 압수수색하고자 하니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는데요.

 

 

추미애는 부당한 청구라며 영장을 기각하였고 전국에서 유일한 영장 기각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법원장은 추미애 의원을 호출해서 “당신, 김대중 정치 운동하는 판사냐?”며 비아냥대듯 야단쳤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추미애 의원은 이 일에 대해 "독재 정권이 저지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같은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날 밤을 새우며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만 해도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금기와 편견의 상징이었고, 불온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저에게 ‘김대중’의 이름이 씌워졌지만 그분과는 생면부지였다. 실제로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우연히 찾아왔다."고 회고하였습니다.

 

판사 생활 10년차이던 1995년, 추미애 의원은 법원에 사표를 내고, 정계에 입문하여 이후의 삶은 정치인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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