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 봉준호 어린시절 / 봉준호 작품 / 봉준호 영화 특징]
봉준호. '기생충'으로 아카데미까지 휩쓸까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7회 골든글로브에서 '작품상-외국어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불리는 시상식인 만큼 오는 2월 열리는 아카데미의 수상 여부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봉준호 감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버리 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배우 송강호, 조여정, 이정은, 제작자 곽신애 대표, 각본을 공동 집필한 한진원 등도 함께했는데요.
'작품상-외국어 부문' '감독상-영화부문' '각본상-영화부문' 등 3가지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아쉽게도 '작품상-외국어 부문'만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골든글로브 본선에서 상까지 받은 것이기에 그 의미가 대단한데요.
봉준호 감독은 시상식 무대에 올라 "자막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며 "우리는 영화라는 한 언어를 쓴다. 페도로 알로모바르 등 멋진 감독들과 후보에 오를 수 있어서 그 자체가 영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수상에 이은 두 번째 영광인데요.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열린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이 역시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었죠.
당시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며 "'기생충'이라는 영화는 놀라운 모험이었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저와 함께해준 아티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무엇보다도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배우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상의 영광을 배우들에게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은 "영화감독을 꿈꾸던 어리숙한 12살 소년이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만지게 된다니"라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북미에서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시상식 진출을 꽤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는데요. 토마토 신선도로 영화 평점을 집계하는 로튼 토마토에서 99%로 최상의 점수를 받았고, 현지 주요 언론 리뷰를 숫자로 환산해 보여주고 있는 메타크리틱 역시 높은 평점인 95%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그는 누구인가?
- 봉준호 -
본명 봉준호
1969년생 봉준호 올해 만 50세
잠실고등학교-연세대학교-한국영화아카데미
- 봉준호 어린시절 -
봉준호의 누나인 봉지희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린 시절 봉준호는 '조용하고, 말수가 없었고, 느렸고, 공부는 굉장히 잘하고, 리더십도 있었지만, 특별히 끼가 있다거나 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 서재에서 시중에 없던 영화, 건축, 디자인 관련 수입도서들과 같은 다양한 책을 읽으며 자랐다고 하는데요, 봉준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문학, 음악을 다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봉준호가 영화감독이 된다고 했을 때, 봉준호의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라며 격려를 해주셨다고 하네요.
영화감독을 꿈꾸며 잠실에서 중, 고교 시절을 보내고, 연세대 사회학과에 88학번으로 진학했던 봉준호는 이장호, 배창호 감독을 보면서 굳이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연세대에 '노란문'이란 영화 동아리를 만든 봉준호는 16mm 필름으로 첫 단편영화 ‘백색인’을 연출했습니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11기로 입학했고, 16mm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 및 '지리멸렬'을 연출했는데요.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봉준호는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각본 등의 활동을 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우노필름 차승재 대표의 눈에 띈 봉준호는 31세로 ‘플란더스의 개’로 남들보다 일찍 장편영화 데뷔를 했는데요.
봉준호는 '플란더스의 개'의 흥행 실패로 위기에 처했지만, 봉준호의 재능을 믿은 차승재 대표가 다시 기회를 줬고, 이때 연출한 영화가 '살인의 추억'입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봉준호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후 2006년에 '괴물'로 1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의 대표 감독 반열에 올라서게 되죠.
봉준호는 사회성이 부족해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그 결핍을 상상력으로 채워왔다고 합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그때마다 이야기를 썼는데요. 상상력이 차곡차곡 쌓여 창작의 자양분이 되었고 그렇게 그는 영화와의 거리를 좁혀왔습니다.
봉준호는 어릴 적 자신이 ‘변태’였다고 말한적이 있는데요. 그렇다고 옷장 속에 채찍을 숨겨놓고 다니는 진짜 변태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변태처럼 이런 저런 상상을 한다고 합니다. 그가 정의하는 변태란,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바퀴벌레를 유리병 속에 가둬두고 한참을 관찰한다거나, 싫어하는 선생님이 있으면 어떻게 완전범죄를 꾸며 죽일까를 구상하는 식이죠. 그의 '변태력'이 그가 영화를 만드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네요.
- 봉준호 작품 -
봉준호는 1994년 16미리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 '지리멸렬'을 만드는데 특히 '지리멸렬'은 한국단편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품입니다. 그해 밴쿠버 국제영화제와 이듬해 홍콩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화려하게 이름을 알립니다.
봉준호는 영화아카데미 친구들의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2001 이매진' '모자'에선 촬영을, '하늘 소리 땅 소리' '포도 씨앗의 사랑'에선 조명을 맡으며 영화 제작과정 전반에 대한 감각을 익혔습니다.
졸업 후 그는 충무로에서 경력을 쌓아갑니다. 1996년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연출부를 거쳐 1997년 '모텔 선인장' 조연출로 현장을 경험했고, 1999년엔 '유령'의 각본을 썼습니다.
2000년 '플란더스의 개'로 31세의 나이에 남들보다 일찍 감독 데뷔를 합니다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흥행 실패로 위기에 처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비평은 물론 525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안착합니다.
2006년 세번째 장편영화 '괴물'로 '천만영화' 감독 대열에 올라선 그는 2008년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도쿄!'에 참여하며 국제적인 프로젝트의 감을 익힙니다.
2009년엔 네번째 장편영화 '마더'로 한국영화 첫 미국 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2011년엔 미국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세계적인 감독으로 올라섰고 2017년엔 한국영화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한미합작영화 '옥자'를 내놓았습니다.
- 봉준호 영화 특징 -
봉준호 영화에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에는 터널 앞에 서서 화면을 노려보는 송강호, '괴물'에는 한강다리에서 떨어지는 괴물, '설국열차'에는 계속해서 앞 칸으로 전진하는 크리스 에반스, '옥자'에는 거대한 슈퍼돼지가 도시를 질주하는 이미지 등입니다.
'마더'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노을 지는 관광버스에서 춤추는 김혜자의 실루엣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장면을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가 20년 후 영화 찍을 때 꺼내 썼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괴물'은 고등학생 시절 집에서 창밖으로 잠실대교를 내다보다가 교각에 뭔가가 매달렸다가 떨어지는 것을 본 기억으로부터 발화한 영화입니다. 또, '옥자'는 이수교차로에서 신호대기하던 중 고가도로 아래 그늘진 부분를 쳐다보다가 그곳에 시무룩하고 불쌍한 표정의 동물의 있으면 어떨까 상상했던 것을 붙잡고 있다가 발전시킨 영화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일상에서 우연히 떠올린 이미지가 너무 좋으면 그것을 꼭 영화로 만들고 말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기발한 상상력에 집요한 실행력이 가미된 결과물입니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는 이성재가 거리가 100미터임을 증명하겠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굴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이처럼 일상에서 느꼈던 사소한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가 에피소드로 만든 것입니다.
봉준호 영화에는 항상 유머도 있는데요. 심각한 상황일수록 이런 유머는 효과가 배가됩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는 자장면을 먹으며 ‘수사반장’을 흉내내고, '괴물'에서 변희봉은 오징어 다리 갯수를 놓고 실랑이를 벌입니다. 또, '옥자'에서 안서현이 뜬금없이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외치거나 변희봉이 공항에서 산삼을 건네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장면들은 모두 봉준호 감독이 직접 겪은 사소한 경험에서 우러난 것입니다.
봉준호 영화에는 항상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도시 형사와 시골 형사, '괴물'에서 한강에 뜬금없이 괴물이 나타난다는 아이디어, '마더'에서 범죄와 광기에 휘말린 국민 엄마, '설국열차'에서 빈민들의 꼬리칸과 호화로운 객실, '옥자'에서 산골 소녀와 뉴욕 글로벌 기업 등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피사체가 한 화면에 잡힐 때 영화의 긴장감은 배가됩니다.
워낙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을 좋아하다보니 봉준호 감독은 다국적 프로젝트도 즐길 수 있게 됐나 봅니다. 언어 소통 등 여러 문제가 있을 텐데도 그는 낙관적이네요. 다국적 영화인들이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도 봉준호만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봉준호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영화가 비현실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장면은 오히려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관객이 영화 속 설정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 대해 “가장 다큐처럼 찍고 싶었던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괴물이 한강에 처음 출현하는 장면을 예를 들어보면 이런 특징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한강변이 아수라장이 되고 있는데 카메라는 이 모습을 한강 다리를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잡습니다. 버스 안 라디오 방송에서는 '57분 교통정보'가 흘러나오는 중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설정은 영화 속 장면을 실제인 것처럼 믿게 만들어 관객의 몰입을 돕는 효과가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장 경계한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관객이 영화를 해석할수록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 이 별명을 의식하다보면 자신이 어느 순간 ‘떡밥’을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될까봐서라고 합니다.
‘봉테일’의 대부분은 똑똑한 관객에게 생각지도 못한 것을 해석당한 것이기에 그것을 의식하다보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죠. 있는 척하지 않고, 인위적인 것을 배제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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